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E D R , A S I H C RSS

"100분 토론"에 대한 역링크 찾기

100분 토론의 역링크


역링크만 찾기
검색 결과 문맥 보기
대소문자 구별
  • 김민전
         * 2003년 : [[문화방송]] 《[[100분 토론]]》
  • 박경석(1933)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 신동호 (아나운서)
         * 《[[100분 토론]]》(2012년 2월 28일 ~ 2013년 8월 13일)
  • 신해철
         === MBC [[100분 토론|<span style="color:black">100분 토론</span>]] 출연 ===
         MBC [[100분 토론]]에 여러차례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 [[간통죄]] 폐지 · 체벌금지 등을 주장하였다. 또 100분 토론 300회, 400회 특집에서는 '최고의 비정치인 논객'으로 선정돼 참석하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4&aid=0002709814 '마왕' 신해철, 그는 언제부터 독설가가 됐나]</ref> 이처럼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등을 주장한 것과 관련하여 신해철은 아래와 같은 얘기를 한 바 있다.<ref>[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1002151822315&code=210000, 경항신문, 2010-02-15, <경향과의 만남> 사회적인 문제 소신 발언 가수 신해철]</ref>
         [[2005년]] [[11월 3일]] MBC 100분 토론에서는 간통죄 폐지 찬반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이 방송에 신해철은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는 측의 패널로 출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0148403 경향신문, 2005-11-02, 신해철 ‘간통죄폐지’ 100분토론]</ref> 한편 그로부터 10년 뒤, 그리고 신해철이 사망한 후로부터는 4개월 뒤인 [[2015년]] [[2015년 2월|2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형법상의 간통죄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신해철이 주장해왔던 간통죄 폐지는 신해철 사후에야 현실이 됐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502261641394710 뉴스엔, 2015-2-26, 신해철 사후 4개월, 간통죄 폐지는 현실이 됐다]</ref> 아래는 100분 토론에서 신해철이 했던 발언 중 일부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1&aid=0002590772 서울경제신문, 2014-10-28, "국회를 유해장소로…" 신해철의 통쾌한 어록들]</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1&aid=0000021520 조이뉴스24, 2005-11-04,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간통죄 100분 토론 논란]</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19550 스타뉴스, 2005-11-04, '100분토론' 신해철, 발언만큼 의상도 화제]</ref>
         2004년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체벌금지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해철은 카페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 = 故 신해철 과거 체벌금지 운동 "눈 감을 때 음악보다..."|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358020|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4-10-28}}</ref><ref>{{뉴스 인용|제목 = 신해철, '100분 토론'서 체벌 금지 주장|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348944|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6-07-05}}</ref>
         [[2006년]] 체벌 금지를 주제로 토론을 펼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폭력은 전염되면 점점 강해지고 그 효과는 약해진다. 폭력 이외의 대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운동은 [[201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이 '경기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면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이후 광주광역시교육청([[2011년]] 10월), 서울특별시교육청([[2012년]] 1월), 전라북도교육청([[2013년]] 7월)이 차례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3358020 故 신해철 과거 체벌금지 운동 "눈 감을 때 음악보다..."]</ref>
         [[2008년]] [[12월 19일]]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서 신해철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처참한 언어들의 폭력 현상들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파고들어가서 '우리 국민들의 품성이 거칠어지고 어린 시절부터의 품성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문제가 있다'라는 점에서 출발해야지, 그것을 처벌하고 법을 만든다고 해서 크게 개선되어질 것 같지 않다"라고 하며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ref>JTBC 뉴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620473 "가수이자 논객…고 신해철, 팬들 마음 속 영생할 것"]</ref>
         | {{날짜|2005-03-10}} || [[MBC]] || [[MBC 100분 토론]] || 출연 (논객) || 〈[[대마초]] 논란〉 편
         | {{날짜|2005-11-03}} || [[MBC]] || [[MBC 100분 토론]] || 출연 (논객) || 〈'[[간통죄]] 폐지'에 대한 논란〉 편
         | {{날짜|2006-07-06}} || rowspan="2" | [[MBC]] || rowspan="2" | [[MBC 100분 토론]] || 출연 (논객) || 〈체벌, 폭력인가 애정인가〉 편
         | {{날짜|2006-12-21}} || rowspan="2" |[[MBC]] || [[MBC 100분 토론]] || 출연 (논객) || 〈위기의 가요계 해법은 없는가?〉 편
         | {{날짜|2008-12-19}} || [[MBC]] || [[MBC 100분 토론]] || 출연 (논객) || 〈400회 특집 - 2008 대한민국을 말한다〉편
         | {{날짜|2011-04-01}} || [[MBC]] || [[MBC 100분 토론]] || 출연 (논객)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편
  • 유승민(정치인)
         [[100분 토론]]에서 대표적인 진보 논객 [[유시민]]과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100분 토론]]에서 보수 측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 아무 준비도 없이 나와서 형편없이 발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승민은 경제학자답게 논지에 어긋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1964)|이재명]] 성남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전원책의 맹공을 뚫고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 전원책
         얼마 동안 [[자유선진당]]에 입당해서 대변인 역할을 맡았으며, 당의 방침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퇴하고 탈당했다. [[http://www.leesangdon.com/bbs/board.php?bo_table=column&wr_id=57&page=46|당시 상황에 대한 이상돈 교수의 글]] --[[기네스북]]에 오를 나흘!-- 이후 토론 참여에는 보수 측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으며 2008년 6월 20일에는 [[촛불집회]]를 민중독재라고 평하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촛불시위는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 2008년 12월 18일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촛불집회는 한미 FTA를 구실로 한 반정부 운동이다."라고 평가했다.
         안보에서 막힐 정도로 비타협적인 모습이라 다른 사안에서도 그럴 것 같은 편견이 있지만 실제론 상당히 중도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는데, 교육 개혁에 대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중학교 교육을 뿌리부터 뽑아 바꾸겠다."'''라고 말할 정도다.[* 100분 토론 500회 특집에서 20대의 취업난에 대한 문제로 초등학교, 중학교에 인문학 수업의 결여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여담으로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발언들은 그냥 상징적 의미지, 정치에 뜻을 두는 것은 아니다고. 여튼 진보적 성향 자체는 어느 정도 확고한 부분도 있어서 주 맞토론 상대방이던 [[진중권]]은 "왜 거기 계세요?"라고 물어볼 정도. 참고로 진보 성향인 진중권과는 사적인 자리에서 호형호제할 정도로 굉장히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해서 그를 결코 보수주의 틀 밖의 인물로 설명할 수 없다. 몇 가지 진보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해서 호주제 찬성, 공기업 민영화 찬성 등 그의 정치적 성향 기저에는 경제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주의]]가 기본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 [[100분 토론]] 출연 ===
         2011년 11월 10일자 MBC 100분 토론에 모처럼 출연했는 데 얼굴이 너무 야위어서 [[정사갤]] 등지에서는 [[암드립|암 걸린 게 아니냐는 개드립]]이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자신이 자신있게 발언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이상적인 대안만을 내놓은 채 끝나 밋밋했다는 평. --그나마 그중 백미라면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대체로 친노 성향이며 정확히 말하자면 친노 세력의 존재 자체를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홍보수석 재직 중 [[구한말]]의 네임드 탐관오리 [[조병갑]]의 증손녀임이 알려지고 난 후, 조병갑은 [[동학 농민 운동]]의 정당성을 위한 희생양이며 조병갑이 동학 농민 운동의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 오류라며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안 나나~~ [[항변]]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상이라는 관계를 제외하면 단순 남인 만큼 증조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든지 솔직히 밝히고 자기는 그와 별개로 애국하면 되는 건데 굳이 또 조상 쉴드를 치다가 역관광...] 하지만 결국 이에 대해 사과하고 청와대 홍보수석 자리에서 [[사퇴]]한 바 있다. 이때 조병갑의 가계가 재조명되면서 [[조기숙]]의 조부뻘인 조강희도 친일 행각이 밝혀져서 [[조기숙]]에 대한 여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고부 농민 봉기]]의 그 [[조병갑]] 맞다.]--과의 배틀 정도?--
          * 의외로(?) 사적인 자리에서는 일부 진보 인사들과도 친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썰전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유시민]] 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진중권]] 교수와도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썰전에서 유시민의 부재로 진중권이 대리 출연 했을 당시 방송분에서 밝혀진 부분. 그리고 유튜브 같은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과거의 [[100분 토론]] 비하인드 컷에서 두 사람이 사적에서 얼마나 친한지 아주 잘 드러난다.] 특히 썰전에서 언급하기로는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로 분류되는 [[정의당]]의 故 [[노회찬]] 의원과도 사적으로 친했던 듯. --그냥 [[노회찬|노]][[유시민|유]][[진중권|진]]과 전원책이 친한 것일 수도--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친구 사이라고 한다.
12238의 페이지중에 6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을 눌러 제목 찾기를 할 수 있습니다.